
숨찬 코트 위에서 든 생각
오랜만에 코트를 뛰니 숨이 턱 끝까지 찼다. 슛은 번번이 림을 빗나갔고, 튕겨 나온 공을 주우러 다니느라 바빴다. 땀을 닦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출근하면 온몸이 쑤실 텐데, 나는 왜 이 피곤한 짓을 다시 사서 하고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쩌면 나는 농구라는 운동 자체를 미치도록 좋아하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 농구화와 늦은 밤의 슛 연습
어릴 적 친구들이 다들 축구장으로 몰려갈 때, 내게 유일하게 친구들과 신나게 즐길 수 있는 놀이는 농구였다. 새 농구화를 사고 공을 고르는 과정부터, 땀을 뻘뻘 흘리고 나서 다 같이 맛있는 걸 먹으러 가는 그 모든 시간이 참 좋았다.
동네 코트에 나가면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금세 편을 먹고 어울릴 수 있었다. 이름도 모르는 낯선 사람과 눈빛을 맞추며 패스를 주고받고 땀을 섞는 법을 그때 배웠던 것 같다. 조금이라도 더 잘하고 싶어서, 늦은 밤 혼자 공을 들고나가 슛연습을 하던 날들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무언가에 그렇게 푹 빠져 열심이었던 내 모습이 참 좋았다.
술꾼의 핑계와 농구공
직장인이 되고 먹고살기 바빠지면서 농구와는 한참 먼 사이가 되었다. 그러다 최근 우연히 다시 농구를 할 기회가 생겼는데, 바닥에 튕기는 공 소리를 듣는 순간 잊고 있던 옛날 추억들이 쏟아져 나왔다. 지금 내가 뻑뻑한 무릎을 이끌고 농구를 하려는 건, 농구공을 핑계 삼아 순수하게 땀 흘리고 사람들과 어울렸던 '그때의 나'를 데려오고 싶어서인 것 같다.
글을 쓰다 보니 문득,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떠오른다. "나는 술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술자리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거야." 누군가에게는 진심이기도 하지만, 내가 아는 어느 술꾼에겐 술을 더 마시기 위한 뻔한 핑계라고 이기도한 그 말.
지금 내 마음이 그 말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농구를 좋아하는 건 단순히 농구라는 스포츠의 규칙 속에서 점수를 내고 이기기 위해 네트 안으로 공을 밀어넣는 순간과 그 과정에서 오는 쾌감 때문만이 아니다. 농구화를 고르던 설렘, 낯선 사람들과 말없이 땀 흘리던 코트의 공기, 끝나고 먹던 꿀맛 같은 야식까지.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 그 시간을 누군가가 함께 보냈다는 사실과 그 누군가들까지 다 좋은거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어쩌면 그 대상 하나만을 순수하게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에 얽혀 있는 수많은 기억과 분위기, 사람들을 통째로 긍정하고 좋아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이런 내게 그 모든 걸 아울러서 '농구를 좋아한다'라고 부르는 거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물론 그 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오늘은 '농구'라는 추상적인 단어로 내 마음을 뭉뚱그리기보다, 그 안에 담긴 내 진짜 취향과 흩어진 기억의 조각들을 한 번쯤 선명하게 짚어보고 싶었다.
나는 앞으로도 주말이면 신발장에 둔 농구화를 챙겨 신고 코트로 나설 생각이다. 대단한 기술을 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농구공에 얽혀 있는 그 좋았던 시간들을 다시 한번 내 곁에 두기 위해서 말이다.
나는 농구를 좋아하지만, 농구하던 내 모습도 좋아한다.
나는 농구를 좋아하지만, 농구를 같이하는 사람들도 좋아한다.
나는 농구를 좋아하지만, 농구를 하러 가는 그 길도 좋아한다.
나는 농구를 좋아하지만, 농구를 하고 난 이후의 시간도 좋아한다.
나는 농구를 좋아하지만, 농구를 하지 않을 때 농구를 떠올리는 순간도 좋아한다.
나는 농구를 좋아한다.
나는 좋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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