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름을 말하기 시작한 기계
무심코 틀어둔 유튜브 영상에서 누군가 꽤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AI는 결코 모른다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 그 메타인지야말로 AI 시대에 인간이 가진 유일한 경쟁력입니다."
요즘 다시 읽고 있던 노자 『도덕경』의 한 구절이 자연스레 겹쳐졌다. '지부지상 부지지병(知不知上, 不知知病)'.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최상이요, 모르면서 안다고 우기는 것은 병이라는 오래된 통찰이었다.
하지만 나는 영상 속 그 사람의 말에 선뜻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초기 생성형 AI들이 아는 체하며 그럴싸한 거짓말을 지어내던 것은 사실이지만, 기술의 진화는 생각보다 빠르다. 최근의 고도화된 AI 모델들은 학습 데이터를 점검하여 확신이 없으면 확률적 추론을 멈추고 명확히 "모릅니다"라고 대답하도록 훈련받고 있다. 기계조차 자신의 결핍을 인지하고 선을 긋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인간만이 메타인지를 가졌다는 그 위로가, 어쩌면 도래한 시대의 진실을 애써 외면하려는 조용한 '부지지병(不知知病)'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AI가 자신의 한계를 인간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계산해 내는 시대가 온다면, 우리는 이 거대한 기술의 파도 앞에서 어떤 마음을 가슴속에 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오래된 책이 묻는 우리의 병(病)
기계조차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바라봐야 할까. 나는 노자가 말한 저 '병(病)'의 본질을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인간이 처한 진짜 문제는 지식의 부족 자체가 아니다. 가만히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면, 끊임없이 정답과 효율을 요구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모른다"는 빈칸을 무능함과 동의어로 여기도록 학습받아 왔다. 그래서 우리는 대화의 공백을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그럴싸한 단어들을 이어 붙여 아는 체를 하는 만성적인 질환을 앓게 되었다. 노자가 꼬집은 병은 무지 그 자체가 아니라, 무지를 감추려 허세를 부리는 인간의 연약함일 것이다.
나는 우리가 AI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하는 그 알량한 '메타인지'의 상당 부분이, 사실은 무지를 인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얼마나 티 나지 않게 포장할 수 있는지 눈치를 살피는 데 쓰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씁쓸해졌다.
계산의 멈춤과 감정의 시작
AI는 데이터가 부족한 임계점에 도달하면 "모릅니다"라고 담담하게 텍스트를 출력하고 연산을 종료한다. 기계에게 모름이란 그저 확률의 미달일 뿐, 어떤 감정적 동요나 타격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인간은 모름을 마주했을 때 앓는다. 남몰래 부끄러워하고, 당황하며, 자존심 때문에 스스로를 속이다가도 결국 그 결핍감을 묵인하지 못해 밤을 뒤척이며 엉뚱한 상상을 하고 질문을 던진다. 기계의 모름이 계산의 '끝'이라면, 인간의 모름은 감정과 사유의 '시작'이다.
나는 감정 없이 쿨하게 "모른다"고 선언하고 멈춰서는 AI의 깔끔함보다, 알지 못한다는 사실에 뒤척이고 부끄러워하는 인간의 그 서툰 수치심이야말로 진정한 앎과 진화의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마음을 품고 나아갈 것인가
고도로 발전하는 기계 앞에서 인간은 가슴에 어떤 마음을 품어야할까..? 완벽한 지식의 창고가 되려는 강박, 흠결 없는 정답만을 빠르게 뱉어내려는 기계적인 욕망을 내려놓는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모름을 단순히 아는 것(인지)에 그치지 않고, 그 결핍이 주는 찝찝함과 고통을 피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매끈한 정답을 내놓는 완벽한 사람이 되기보다, 평생 나의 무지를 뼈아프게 부끄러워하며 기꺼이 내일의 질문을 찾아 헤매는 사람으로 살아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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